누가 청첩장을 직접 만들어요

개발자들이 온라인 청첩장 직접 만드는 걸 보고,
“누가 청첩장을 직접 만들어요?”
약간은 비웃으며 반문하던 내가
그 ‘누가’가 되었다.
(실언의 악마, 번복의 귀재)

상용 서비스를 쓰고 싶었으나, 우리가 원하는 기능과 디자인이 모두 갖춰진 템플릿이 없었다.
(모두들 그렇게 수제 청첩장을 만드는 것이었구나)

마치 청첩장을 위해 준비해놓기라도 한 듯 올해 초에 찍은 흑백 사진들과
결혼식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미국 유타주에서 줌으로 진행한 결혼식 영상을 사용하고 싶었고,
방명록 기능과 참석 설문 폼 정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.
(이렇게 적고보니 넣고 싶은 게 참 많았구나)

직접 만들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
고마운 알렉산드로 님의 오픈 소스를 발견했다.
(샤라웃 투 알렉산드로!)

이 블로그의 이름의 full name인 love-is-a-way-of-being이라는 이름의 도메인을 구하고,
도메인 주도 개발을 시작했다. (웃음)

처음에 내가 이걸 고쳐서 만들자고 했을 때
“너무 고생하는 거 아냐?”
고 말하던 아내는 기조 색깔을 고르고, 청첩장 멘트를 적고, 캐러셀에 들어갈 사진을 골라 내게 넘겼고

후반부로 갈수록 CSS에 고통 받는 나를 구하고자 대문 사진과 식순을 이미지로 제작하기도 했다.
(아내가 없었으면 이 프로젝트는 결코 사람들 앞에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.)

완벽한 우리 개발자-기획편집자 커플에게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,
그건 바로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.

안 하면 안 했지 재밌는 일에 서로를 더 부추기는 법밖에 모르는 우리는
몇 주간 주말을 반납하고 작업에 몰두했다.

코딩은 사실 cursor가 거의 다 했다.
뭔가가 깨져도 cursor가 고치고 고친 코드에 내가 윤문을 하는 식이었다.

바이브 코딩은 코드 베이스가 작을 때 좋다고 하던데, 역시나 그랬다.
망해도 내 프로젝트인 것을 기회 삼아 신나게 토큰을 썼다.

주문하고 기도하고 애원하고 훈계하며
방명록도 만들고, 캐러셀도 만들고, 반응형도 고치고, 계좌 번호 복사 기능도 넣고
사부작사부작 원하는 걸 하나씩 추가하니 신이 났다.

일단 예뻐서 좋았고,
내가 원하고 필요한 걸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게,
내가 만들 수 있는 걸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게 좋았다.

부트캠프 졸업하고 사이드 프로젝트 제대로 한 게 없었는데..
마감이 있고 쓸모가 있으니 또 와다닥 하게 되는구나 싶어 웃겼다.

사실 6월에 결혼식을 하고 후기를 이제야 쓰면서
로컬의 작업 내역을 이제야 깃헙에 푸시한다.
(이렇게 정신 없고 정리 없이 안 사는 법 아시는 분?)

원작자가 사용한 스택인 Fauna 데이터베이스 대신에 supabase를 써보았다.
상당히 직관적인 게 마음에 들었다.
(지금은 supabase에서 주기적으로 idle 상태의 프로젝트를 비활성화하는 바람에, 매번 수기로 재활성화하고 있어 상당히 불편하다.
곧 구글 시트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. 꼭 가야지..)

결혼식은 끝났지만 이 방명록은 계속 쓸 수 있게 열어둘 생각이다.
우릴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언제든 우리를 축하하고 싶을 수 있으니까.
(후원하고 싶을 수도 있고 말이다.)

우리 결혼식은 물론, 청첩장보다 멋지고 즐겁고 의미있고 대단했다.
친구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.

결혼식에 대해 아내가 올린 블로그에서 대강 엿볼 수 있다.

친구들아, 사랑해.
너희가 없었으면 이 결혼식은 절대 완성될 수 없었어. 알지?

사랑은 존재의 방식이고,
우리의 존재의 방식이다.

더 많은 사랑을!
Love is a way being.